앞서 이 카테고리에 리웨이펑의 인터뷰들이 있었고, 다음에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글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 글에서 중국 기자는 계속 한국 축구를 관찰하며 소개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그 기자가 연재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전 글과 약간의 중복된 내용이 있긴 하지만, 더 다른 내용이 이어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 연재를 번역하는 저의 취지는, 중국 축구인의 눈을 빌려 우리를 돌아보자는 데 있습니다. 사실 남이 대단하게 추켜세우는 것이 때론 오해인 경우도 있고, 오히려 우리의 단점인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히딩크는 선수들 사이의 존칭을 생략하도록 했었죠. 그런 형식 파괴가 우리에게 색다른 의미로 다가왔음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저는 중국 기자의 글을 통해서 그런 ‘색다른 의미’를 느껴보고자 합니다.
(말 한 마디 없이 펌해가는 분들이 많군요. 플러그인은 제대로 작동도 안하니 참...
막상 블로그 만들고 보니 왜 그렇게 사람들이 욕하는 지 알겠네요.
펌질한 블로그가 상위노출되는 네*버... )
한국 축구에 대한 심층 탐구
– 그들은 무엇으로 중국을 앞서나가나
4월 27일
출처 网易体育
http://sports.163.com/09/0427/11/57TCV66I00051C88.html
글/ 李宏文
편집자의 말:
중국 축구에게 있어 ‘공한증’은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비록 많은 중국 축구인들이 이를 코웃음치고 있지만, 그 명명백백한 존재는 벌써 3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얼마 전 끝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FC)에서 중국과 한국이 맞붙은 가운데, 중국의 4개 팀은 2승 2무 4패의 성적으로 다시금 하향세로 돌아섰고, 더욱이 일부 경기는 중국 팬들의 탄식을 자아내게 했으니, 아직은 ‘공한증’이란 중국 축구의 고유명사가 역사의 창고에 묻혀버리진 않은 것이다.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건 진보의 지름길이다. 한국 축구가 장점 일색인 건 아닌데, 그들이 어떤 마법을 썼길래 중국 축구가 지금까지도 격차를 좁히지 못한 것일까? 우리는 대체 이웃에게서 무엇을 배워 자신을 튼튼히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축구를 깊이 탐구하다’ 이 연재를 게재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에게 한국 축구의 진면모를 확실히 알게 해주기 위함이며, ‘공한증’ 뒤에 숨겨진 더욱 중요한 사실들을 보여줌으로써 중국 축구의 나아갈 방향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원고의 집필자 이홍웬(李宏文)은 선전 핑안(平安)팀의 부팀장(직책은 정확하지 않네요…)으로 차범근(당시 감독)의 조수 역할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축구 기자로서 차범근 감독, 수원의 통역 김청일, 리웨이펑 및 많은 한국 선수와 두터운 우의를 맺고 있다. 여러 해 동안 무수히 중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공한증이란 무엇인가, 중국 축구가 한국에 뒤떨어진 원인은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중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특히나 중국 축구에 종사한 관계자이자 현역 축구기자로서, 한국 축구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지나친 자기 비하이며 남의 기세나 올려주는 짓이 아닐까? 예전에는 나 또한 절대다수의 중국 팬들처럼 그렇게 생각했었다. 한국 축구가 뭐 대단한 게 있는가, 공한증엔 약도 없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1998년 차범근 감독과 선전 핑안 팀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더욱이 최근 4년 동안 직접 한국 리그와 프로 팀을 겪으면서, 그제서야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한국 축구가 대단할 게 없다고 생각할수록, 더욱 그에 대해 제대로 알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한국 축구를 제대로 모를수록, 중국 축구의 공한증은 더욱 고치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지피지기(
한국 축구의 탐구 1 : 한국 축구 30년 기록의 힘
출처 newsis.com
중국 축구의 공한증은, 당시 <足球> 잡지에 나온 ‘흑색3분’이란 코너의 재치있는 서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어쩌면, 역사를 대함에 있어, 실패자만이 가장 사무치게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중국이 오랫동안 ‘공한증’을 부르짖은 후, 2004년 3월에 이르러 첸양푸(沈洋福) 감독이 올림픽 팀을 이끌고 서울에서 예선을 치를 때에 와서야, 한국 언론과 팬들은 처음으로 ‘공한증’의 깃발을 크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중국 언론이 줄기차게 공한증을 퍼뜨렸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상호 전적만을 나열하던 한국 언론이 이 단어를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출처 yonhapnews.co.kr
시시콜콜히 말이 많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공한증 운운하는데, 1978년 차범근의 골이 중국 축구 악몽의 시작이란 것을 아는 중국인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거다. 차범근의 그 골도 모르는 판이니 우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만하다.
차범근은 한국의 축구 영웅이자, 아시아의 축구 영웅이다. 중국 축구가 한국과 비교해 어디에서 차이가 나느냐고 묻는다면, 가장 간단한 답은 이렇다. 차범근은 한국 축구 꿈나무들이 쫓는 목표이자, 한국 축구 앞에 이정표로서 우뚝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젠가, 우리의 선수가 아이들의 축구 우상이 되고 평생을 바쳐 뒤따를 지표가 될 수 있을 때, 그때가 와야만 중국 축구가 진정으로 아시아의 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축구의 탐구 2: 존중하는 것과 존중받는 것
한국인의 예절은 한국에 가보았거나 그들과 만났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험했을 것이다. 한국에 100일 있었던 리웨이펑에게 한국과 한국 축구에 대한 감상을 물으면, 그가 반드시 얘기하는 하나가 바로 ‘존중’이다.
4월 22일 선화(申花) 팀의 경기가 끝나고, 리웨이펑이 나를 보고 처음 한 말이 ‘기쁘다’였다. 그 기쁜 분위기 속에서는 감격에 북받친 말이 오히려 가장 솔직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날 경기 직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출처 osen.co.kr
이미 퇴장을 당했던 리웨이펑은 휴게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선수 출입로에서 마지막 몇 분 남은 경기를 보다가 이란 주심의 휘슬이 울린 후, 운동장에 들어가 수원 팀 동료와 축하를 나누었다. 상대 팀과 악수를 나눈 후, 주장 곽희주는 선수들을 이끌고 하프 서클을 넘어, 멀리서 온 선화 팬들에게 박수를 치며 경의를 표했다.
리웨이펑은 이렇게 말했다. 전에 중국에선, 경기 끝난 후 자기 팬들에게 감사 인사하는 것만해도 대단한 일이었는데, 상대 팀 팬들에까지 그러는 건 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라고. 이 부분은, 누가 먼저 했느냐를 따질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는 기본적인 예의다. 통역 김청일(당시 그는 통역을 위해 상하이에서 선전까지 왔었다고 한다)의 기억으론, 2005년 5월 25일 수원 삼성이 선전에서 AFC 1차예선을 치르려 할 때, 핑안 그룹의 부사장 孫建一이 팀 전체에게 양고기 통구이를 대접했다고 한다. 식사가 끝나 떠나려는 즈음, 당시 주장이던 김대의가 선수 전원을 줄세워, 함께 孫建一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고 한다.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이것이 바깥에서 남에게 보여주는 체면치레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다. 리웨이펑의 말로는, 구내 식당에서도 선수들은 식사를 한 후 식기를 반납할 때 주방 사람들을 만나면 꼭 인사의 말을 한다고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팀 내에서도, 선배와 고참에 대한 존중은 소홀함이 없다. 리웨이펑의 말이다. 지난 22일 선화와의 경기 전, 차범근 감독이 팀 전체 회의를 끝낸 후, 주장 곽희주는 엔트리에 든 선수를 모아 선수들간의 회의를 가졌다. 처음 말을 꺼낸 것은 나이가 가장 많은 골키퍼 이운재였다. 두 번째는 벌써 35세가 된 김대의였고, 그 다음이 주장 곽희주의 차례였다. 선수들은 공손하게 선배들이 경기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들었지만, 곽희주의 말은 아주 ‘잔인’했다. “내일(22일) 경기에서, 어린 선수들이 많이 나갈텐데, 너희들에게도 아주 좋은 기회다. 만약 열심히 하지 않는 녀석이 있으면 벌금 100만원이다. 알았냐.”
“알겠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젊은 선수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 중국의 팬들로서는 이 얘기들을 듣고 불가사의해 할 것이다. 하지만 수원 삼성 팀, 나아가 한국의 프로 팀에서, 이런 존중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런 존중이 있기 때문에 고참 선수의 기량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젊은 선수들이 성장 과정 속에서 후배들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리웨이펑이 그날 경기 후 했던 한 마디가, 이러한 전통에 대한 가장 명쾌한 해석일 것이다. “역사를 존중하고 현실을 제대로 보는 것, 이야말로 중국 축구에 가장 결핍된 것이다.”
다음 연재가 예고돼 있습니다.
제목은 ‘차범근을 알려주마, 그야말로 한국의 진정한 축구영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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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thpal.tistory.com 아홉친구 블로그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s to everyone. 谢谢大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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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c_bang 2009/06/28 0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이런데 글 같은 거 잘 남기지 않는데...
이번에는 꼭 써야겠네요..
저는 중국인들이 '공한증의 역사 30년'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참 보기 싫습니다.
저렇게만보면, 중국이 30년 전에는 한국을 이겼던 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 중국은 한번도 한국 국가대표를 이긴 적이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찾아봤던 기억을 되돌려보면..
중국은 자기네 나라에서 주최하던 토너먼트에서 우리나라를 딱 한번 이겼던적이 있으나,
그 팀은 한국국가 대표팀이 아니라, 청소년이었던가... 올림픽 대표였다... 였습니다..
그 당시 국대는 싱가포르(혹은 홍콩.. 잘 기억 안남)...에서 열리는 토너먼트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인데 아마도 그 시절에도 싱가포르(혹은 홍콩)은 엄청난 경제력을 가진 곳이었으니..
더 많은 상금 혹은 더 훌륭한 팀들이 출전했을 싱가포르 토너먼트에 국대를 출전시키고...
중국 토너먼트에 어린 선수들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축협 사이트 국대 페이지에 보면... 국대는 싱가포르(혹은 홍콩) 대회에 출전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실제로 중국 국대는 한국 국대를 지난 30년 동안 이긴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 국가가 생기고부터 지금까지 중국은 한 번도 우리를 이긴 적이 없는 것 입니다.
오...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중국은 정작 진정으로 한국대표를 이겨본 적이 한번도 없다. 참고할만한 지적입니다.
다만 전 그렇다고 해서 '공한증의 역사 30년' 같은 말이 폐기돼야 한다곤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중국 축구의 후진성 자체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중국 축구의 수준에 걸맞지 않는 플레이'를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질만한 상대에게 졌다면, 그걸 두고두고 되새길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와서도 진다면, 그때엔 자신에게 모자란 점을 더욱 심층적으로 찾아야겠지요.
그러니까 공한증은 30년이든 10년이든 햇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기지 못한 게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개방 후 근대적인 축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중국 축구는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겠죠. 그러므로 설사 중국 대표가 어느날 우리를 이기게 되더라도 '공한증'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걸 계기로 공한증이 없어졌다고 중국 축구인들이 생각한다면, 눈앞의 결과에 사로잡혀서 진짜 문제를 놓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